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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공원 ‘턴투워드’ 부산 - 참전용사를 위한 전 세계의 묵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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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9-11-13 조회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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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공원‘턴투워드’부산
  -참전용사를 위한 전 세계의 묵념-


  2019년 11월11일 11시 정각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있는 부산 유엔공원기념공원에서 1분간 싸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산을 향해 전 세계에서 부산으로 향한 묵념이 이어졌다. 바로 우리의 민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전몰 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유엔묘지를 향해 세계 곳곳에서 1분간 묵념을 하는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행사가 거행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11일 오전 11시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서 턴 투워드 부산 유엔 참전용사 국제 추모식을 개최하였다. 부산을 향해 하나 되는 순간 이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6.25전쟁 참전 용사와 유가족, 주한외교사절, 시민 등 1,000여 명이 이상 참석 했다. 이날 오전 11시, 부산 전역에 추모 싸이렌이 울리자 참석자들은 1분간 유엔군 묘역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어린 나이에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한 조포 19발도 동시에 발사 됐다. 이후 전투 지원국 16 개국, 의료지원국6개국 국기와 태극기, 유엔기가 무대 중앙으로 들어왔다. 참전용사와 주한외교사절 등의 헌화도 이어졌다. 특히 22개 지원국 가운데 미국 등 12개 참전국에서도 이 행사 시간에 맞춰 묵념이 거행 되었다. 나머지 10개국에서도 현지 시간에 맞춰 묵념을 포함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오거돈 부산시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유경현 헌정회장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모든 노병은 죽지 않는 다 . 다만 사라질 뿐이다. 라는 맥아더 장군의 명언을 영어로 말하며 유회장 의 추모사를 마친후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박재범 남구청장은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가 있는 이곳 이름 모를 낯선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타국에서 기꺼이 목숨을 바친 UN전몰용사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보낸다고 하였다. 유엔기념공원 에는 전몰용사 추모명비에는 17개국 40,896명의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추모명비를 유심히 본즉 있는가? 오석 위로 18개국 젊은 군인 4만896명의 이름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이유도 명분도 모른 채 이역만리 타국에서 초연히 스러진 이들이다. 거룩하고 위대한 명단 이었다. 숙연한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유엔기념공원 하면 이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전쟁고아의 아버지 리차드 위트컴 장군이다. 1953년 부산역전대화재로 인한 이재민 3만여 명을 구한 이는 파란 눈의 위트컴 장군이었다. 그는 군수물자인 천막과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그로 인해 미 의회 청문회에 불려갔으며,“전쟁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 라고 말해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뿐인가? ‘내 그림을 사주시오‘ 부산대학교 윤인구 초대총장 의 부산대학교 종 모양 설계도를 보여주며 “내 그림을 사주시오” 라고 했을 때 위트컴 장군은 흔쾌히 수락하고, 한국정부를 설득해 장전동 부지 50만평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데 큰 도움을 주고 대학건설비용 25만 달러도 지원했으며, 또한 건축자재를 지원하고, 공병 부대 로 하여금 진입로와 부지조성 공사를 돕기도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의료시설의 필요성을 느낀 위트컴 장군은 메리놀병원을 비롯해 여러 의료기관을 건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대한 미군원조처(AFAK)의 기금을 조달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병원 건립을 위하여 각 부대원과 함께 월급의 1%를 헌금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건립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채 거리 캠페인을 했는데, 이 모습이 미국 라이프지(1954년 10월25일자)에 소개되었다.



 유엔평화 기념관에는 리차드 위트컴에 대한 피난민구제, 대화재의재건과 복구, 교육기관 및, 병원의 건립 협력 등 예산을 지원 했을 뿐 아니라, 위트컴은 전쟁고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특히 그는 퇴역 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부산의 재건과 복구에 혼신을 다하였으며, 고아원을 짓고 후원하는 일로 자신의 여생을 헌신했다. 그는 그곳에서 한묘숙 여사를 운명적으로 만나 1963년 결혼했다. 그는 1960년대와 1970년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도 근무했고 1982년 별세했다. 그는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기를 희망해 장군으로는 유일하게 유엔기념 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한 여사는 90세의 일기로 별세해 남편 묘소 옆에 묻혔다. 전쟁고아의 아버지와 운명의 반려자가 함께 평화롭게 안식을 취하고 있는 묘비 앞에서 헌화하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유엔기념 전시관에서는 리차드 위트컴 장군에 대해 상설 전시회를 내년4월까지 열리고 있다.



기념관을 지나면 도은트 수로가 나오는데, 17세의 나이에 전사한 최연소 안장자인 호주병사 JP도은트(DAUNT)의 성을 따서 명명했다. 이 수로는 묘역과 녹지지역의 경계에 있어 삶(녹지지역)과 죽음(묘역) 사이의 경계라는 신성함을 함축하고 있다. 수로의 크기는 폭 0.7m 길이110m 가량 되며, 수로 안에는 물고기와 수련 등의 수생 식물이 서식한다. 도은트 수로를 따라 길을 걸으며 주위를 바라보면 유엔참전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 부산 유엔 기념공원 전 세계 적으로 유일무이한곳, 오늘 턴 투워드 추모식에 참여해보니 거룩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또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땅에 두 번 다시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송명옥 기자 wndhks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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