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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에 즈음하여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8-06-28 조회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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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보훈의 달에 즈음하여


나라를 위해 제 한 목숨으로 초개처럼 받친 호국영령님에게 명복을 비는 것 또한 나라사랑 정신이라본다.

  


66일 아침10시 싸이렌 소리와 함께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명복을 비는 묵도를 올렸다.부산공원에 있는 현충탑과UN공원,그리고 거리에서도 약속이나 한 듯 모든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유독 이달만 호국보훈의 달이 아니고 매달 매달이,매일 매일이 호국보훈의 달이자 호국보훈의 날이다.우리나라가 어려운 역경을 뚫고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이 된 이면에는 우리민족의 끈질긴 도전 정신과 하면 된다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나라를 위해 가랑잎보다 더 얕은 백두간두에 선 나라를 구하고 겨레를 보호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총을 들고 전쟁에 나가 산화 하거나 상이용사가 된 군인들,무슨 말로써 이들을 위로해야 될까.내 남편과 자식이 그렇게 되었다면 하는 생각에 너무나 목이 메이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그런데 현충탑을 참배하고 내려오는 길가나 가정집 앞에 조기를 단 집이 몇 안 되었다.태극기 하나 다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 보이지만 우리가 정한 기념일이고 호국영령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 한다.

 


천만 이산가족이 생겼고 수천수만의 인명피해를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는 건물이 파괴 되었고 중요 문화재가 사라졌다.전쟁의 참혹성은 각종 사진과 보도 자료를 보니 이루 다 말할 수 없다.어떻게 하여 호국보훈이란 말이 생겨났는지 알아보았다.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30대왕 문무왕(文武王)은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김춘수)의 맏아들로써 그의 지략은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태자였다.하루가 멀다 하고 왜구와 울산,부산,울진,포항,강릉,묵호 등의 해안도시를 침입하여 부녀자를 겁탈하고 곡식 등을 약탈하는 등 그 횡포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이러한 상소를 접한 문무왕은 재위20년 동안 왜구의 침략이 도를 넘었다 생각하고 토벌대를 만들어서 격퇴하였으나 집요하게 달라 들었다.이를 보지 못한 화랑들 또한 조를 편성하여 심혈을 기울여서 토벌하기에 이르렀다. 681년 여름 드디어 대왕은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짐작하고 문무백관을 불러 유언을 한다. “짐이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바다에 안장해라 그러면 내가 호국용(護國龍)이 되어 왜놈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그런데 이상한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경주 앞바다15마일 되는 곳으로 왜선이 지나가면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불고 파도를 만나 배가 뒤 짚어지던지 침몰한다는 사실이다.이런 광경을 보고 새인 들은 문무대왕께서 해룡이 되어 이 나라를 수호 한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다.이때부터 호국(護國)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 한다.

단순히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는 백성과 재물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진주성 안에 호국사,금정산성에 있는 범어사 말사인 국청사.여수의 호국사 등 호국과 관계되는 절 역시호국신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현충일에 즈음하여 노는 날로 치부하는 광경을 보면서 나라를 위해 제 한 목숨으로 초개처럼 받친 호국영령님에게 명복을 비는 것 또한 나라사랑 정신이 서 있기 때문이라 본다.

제발 이 날 만큼은 자제하고 나라를 위해 가신 영령들을 위하여 조기를 달아 국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그것이 조상을 위하고 선열들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릴 수 있지 않겠는가.우리는 말보다 실천에 힘써야 한다.실행은 민첩하게 신중하게 이러한 관점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편도욱.조희제. 박모경 ahwjsfl15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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