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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면 안되는 것은 장맛뿐
(주)오복식품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8-03-18 조회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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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간장만 한 우물변하면 안 되는 것은 장맛 뿐

()오복식품 채경석 대표

 

MIT대 존 마에다 교수는 기업의 성공키워드로 '단순함'을 꼽았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군더더기를 없애야 성장가도에 들어설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저 유명한 애플 신화를 남긴 고 스티브 잡스의 경영화두가 '우아한 단순함'이었다. 멸종 직전의 공룡 GE를 일으켜 세운 잭 웰치가 내린 결단 역시 "1, 2등만 남기고 모두 처분하라"였다. 전 세계를 평정한 징키즈칸은 전력의 핵심으로 기동력을 내세웠다. 전술은 다양했을지언정 참으로 심플한 전략 아닌가.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부산 사하구 감천동에서 출발한 향토기업 ()오복식품. 장수기업의 꿈인 설립 100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그 주역이 채경석(70) 대표다. 장류를 고집하는 '단순함'으로 한 우물을 더욱 깊게 파들어 간다. 선친이 하던 사업을 물려받은 때가 1974. 하지만 혈기왕성했던 28살 청년은 엄청난 시련에 부닥쳤다. 대기업 진출로 매출이 매년 20% 이상 곤두박질쳤다. 죽음의 세월을 무려 5년이나 버텨낸 게 신기할 정도다. 대리점주들이 회사에 찾아와 난리를 쳤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길은 회사 간판을 내리거나, 손잡고 가는 것 뿐이니 선택하라고. 채 대표의 강한 맷집에 대리점주들이 손을 들고 발길을 돌렸다.

사태를 수습한 지 몇 년 후, 지역 장류업체들이 물 탄 간장을 만들어 팔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이후 오복은 부산과 경·남북 간장시장을 평정했다. 정도경영이 빛난 시기였다. 고객의 믿음이 자산이었다. 한 번은 큰 사건이 있었다. 매일 아침에 장류를 맛보며 검사를 하는데 맛이 이상했다. 제조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직감한 그는 탱크에 가득찬 간장 18000를 몽땅 폐기했다. 직원들이 재처리해서 팔자고 했지만 "소비자를 속이는 사업을 해선 절대 안 된다"며 끄떡도 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화학간장 시비가 불거지면서 또다시 비상사태를 맞았다. 숙성기간이 짧은 제조방식이 문제가 된 것이다. "당시 양조간장 설비가 국내에 전무했기 때문에 악덕기업으로 몰리면서도 해명조차 못한 채 속앓이를 했습니다." 채 대표는 일본에 양조설비를 구입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엄청난 엔고가 덮치면서 불가능한 상황. 일본의 기술 지도로 한국에서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단박에 거절당했다. 한숨만 내쉬는데 일본기업이 한국 기술로는 어차피 불가능할테니 견학오라고 했다. 무릎을 쳤다. 설비 현장을 토대로 설계도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한 해 매출액의 절반을 투자해 반년간 밤샘을 밥먹듯하며 연구한 결과 양조간장 설비를 최초로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오복 양조간장이 연장근무에도 주문 물량을 댈 수 없을 만큼 인기 상종가를 쳤음은 물론이다.

10년 주기로 밀어닥친 위기는 1990년대에도 어김이 없었다. 이번에는 메가톤급이었다. 간장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것이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면서 무한 출혈 경쟁이 시작됐다. '나 살고 너 죽자'식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이 감감했다. 하도 답답해서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확 띄는 책, '경영혁명'을 발견했다. 당시로선 듣도 보도 못했던 팀경영 방식을 꾸준히 연구한 끝에 그는 획기적인 변신을 꾀한다. 결재 라인과 의사결정 단계를 확 줄였다. 팀장에게 어음발행 권한을 줬고, 인사 채용도 맡겼다.

책임경영 시스템은 날개를 달았다. 3년이 지나자 매출이 두 배로 껑충 뛴 것이다. 중소기업부문 생산성 대상을 받자 전국에서 벤치마킹 요청이 쇄도했다. "순간의 판단이 회사를 살렸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네요." 이후 오복은 100년 기업의 밑바탕을 짜기 시작한다. 공격경영에 나서 김해 진영읍에 양조원액 공장을 짓고 전국적인 시장 확대에 나섰다. 고급 간장 국내 1, 전체 3, 급식시장 1위 타이틀을 손에 쥐었다. 러시아와 미주를 비롯한 해외 시장개척에도 나서 대성공을 거뒀다. "베를린 국제식품박람회에 참가했을 때 다른 한국업체 부스들이 한산했던 반면, 오복은 가져간 상품이 매진될 정도로 고객들이 몰려들더군요. '장땡(장이 동날 정도로 인기만점)'을 보고 자신감을 가졌어요. 현지에 없는 식품을 잘 개발하면 글로벌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감했죠."

오복 브랜드가 명성을 얻자 7년 전 희한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유명메이커의 오복 인수설이 증시에 나돈 것이다. 해당 업체 주가가 하루 상종가를 치는 등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채 대표가 거세게 항의했고 공시로 주가는 원상복귀됐다. 인수설을 흘린 업체는 간장 부문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사실, 속으로는 기분이 좋더군요. 오복이 엄청 올라선 거니까요."

채 대표는 발효 조미식품인 장류의 연구 분야와 시장이 무궁무진하다고 믿는다. 세계 일류상품으로 등극할 날도 머지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서 글로벌 장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간장 하나만 해도 벅찬 판에 욕심부릴 여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 경영환경 악화에 따른 기업들의 평균 수명이 갈수록 단축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15년 정도에 불과하다.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그만큼 장수기업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변신과 질적 성장, 그리고 윤리 경영에 의견을 모은다. 또한 제품 라이프사이클이 긴 단일산업에 매진하라고 충고한다.


채대표와 임직원들


특히 인력과 자본에 제약이 많은 중소기업은 한 우물을 파면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국내 시장에 대한 보호막이 없어지고, 개방화 바람이 거세게 부는 현실에선 더욱 그러하다. 경쟁력을 떠받치는 건 약점과 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이다. 바로 이게 열리지 않는 문을 여는 열쇠이자, 기업을 살리고 키우는 처방전이다. 채 대표의 오복식품이 그 길을 걷고 있다.


 

 채경석 대표


채경석 대표의 경영철학

채 대표는 흔하지만 소중한 값싼 수돗물처럼 맛있는 장을 누구든 안심하고 먹게 하자는 일념으로 회사를 경영한다. 그만큼 사명감이 투철한 기업인이다. 회사 이익을 봉사에 대한 사회의 보답으로 여긴다. 그러니 돈을 추구하기에 앞서 소비자 사랑을 듬뿍 받는 명품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힘을 쏟는다. 그는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존경한다. 특히 '수돗물 경영 철학'. 수돗물은 흔하다. 싼 값에 사서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물이 없으면 사람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마쓰시타는 이를 상품으로 확대 적용했다. 수돗물이 무궁무진하고 값싼 것처럼, 제품도 싸게 많이 보급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줘야한다는 것. 그게 마쓰시타의 바람이었다.

오복의 기업 이념도 마찬가지. 맛있는 장을 누구든 안심하고 구입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채 대표는 추억의 어머니 손맛을 장에 담기 위해 땀흘린다. 매일 출근하자마자 20여 개 장류 제품을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고 10초 가량 머금는다. 하루 30분 간, 40년 넘게 해 온 실력은 대단하다. 맛을 보는 순간 숙성도와 미생물 발효상태, 오염원 여부를 단박에 알아낸다.

명품간장을 지향하는 채 대표에게서 치밀한 전략을 읽을 수 있다. 비교되는 상품들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고, 고객 중심적이 되고자 한다. 그게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가격 이상의 가치로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약속이다.

 

이순 최원열 기자 choiwonye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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