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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 소록도 / 김일기념체육관
발길 닿는 곳마다 한센인의 슬픔이 묻어나

고객 소리함 게시판 읽기
작성일 2017-07-19 조회 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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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소록도


발길 닿는 곳마다 한센인의 슬픔이 묻어나


한국전쟁 직후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Baby Boomer)세대들은 선배인 산업세대와 후배인 ‘386세대낀 세대라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와 별거해 노후를 보내야 하는 첫 세대들이다. 베이비부머의 자녀인 에코부머세대(Echo-boomer Generation)청년실업’ ‘삼포세대’ ‘흙수저등 경제적 빈곤을 암시하는 신조어로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천형의 섬소록도와 베이비부머들의 우상이었던 김일 기념체육관의 답사여행을 통해 희망을 찾아본다.<편집자 주>    


        


'천형(天刑)의 섬'으로 불렀던 전남 고흥 소록도(小鹿島)는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일한 녹도만호 정운의 보직인 녹도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이 소록도이다. 여의도 배 정도인 섬의 형상이 작은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르며, 섬의 전체 둘레가 14km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섬이다. 한센병자의 애환이 깃든 수탄장(愁嘆場) 구라탑(求癩塔,한센병은 낫는다)등에 얽힌 슬픈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인기 높은하모(갯장어)'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녹동항에서 점심식사를 가진뒤 녹동대교를 지나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얻어서 유래된 득량만을 지나 국립소록도병원에 도착해 수탄장을 지나 옆으로 가니 통로에 가로 110m 크기의 옹벽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피를 흘리는 아기사슴' 부조는 과거 인권 유린으로 상처 입은 소록도 주민들의 한 맺힌 세월이 담겨 있는 듯하다. 옹벽 도자부조벽화 작업에 참가한 한센병자의 얼굴에서는 슬픔이 가득 묻어난다.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자혜의원'이 문을 연 것은 일제시대인1916224일이다. 1907'나병 예방법'을 제정해 한센병 환자를 국가요양소에 강제 수용해 온 일본은1916년 조선총독부령을 통해 조선의 한센병 환자를 소록도에 격리시켰다.처음 73명이 격리당한 이후 많을 때는 환자가 6,000여 명에 달했다. 이젠 환자 약간 명이 병동에 있을 뿐 소록도는 천혜의 경관과 한센인들의 슬픈 이야기들이 융합되어 관광 명소인 <희망의 섬> 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센인들의 학대와 인권침해를 보여주는 곳은 검시실과 감금실이다. 해부실로 사용된 검시실에는 당시 검시대로 사용했던 흰 돌 테이블이 있고 벽에는 수납장이 세워져 있다. 남자들은'거세'당했고 임신한 여자는 강제 낙태를 받았다. 사망자는 검시를 마친 뒤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으며 시신은 화장됐다. 이를 두고 한센인들은"한센병 발병으로 한 번, 사망 후 시체 해부로 한 번,장례 후 화장으로 한 번,모두 세 번 죽는다."고 한다.

해방 후 한센인 학대는 멈추지 않았다. 1948년 소록도병원은 직원지대와 환자지대로 분리됐다. 직원지대의 보육소에 있는 미감아와 환자지대에 있는 부모가 만날 때 도로를 사이에 두고 면회했다. 한센인 부모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도열해 있는 자식을 만지지도 못하고 바라보며 넋을 잃고 울 수밖에 없었다고 해서 수탄장(愁嘆場)이라고 불렀다.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은 2016517, 소록도 자혜의원 개원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으며,한센병 자체를 다루는 박물관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소록도의 역사와 자료들을 상당히 잘 모아둔 곳이다. 소록도에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려보아야 하는 곳. 특히 남도의 찌는 더위와 맞닥뜨릴 때, 딱히 쉴만한 장소가 없는 소록도 내에서는 안식처의 역할도 할 수 있도록 건물이 잘 설계되어 있다.

소록도 중앙공원은1934년부터 환자 위안장으로 가꾸었던 산책지를 대유원지로 만들어 2년 뒤인1936121일 준공한 곳이다. 그냥 방문하면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지만, 공원 곳곳에 한센인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곳이기에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詩碑)가 있는데,시비가 기록되어 있는 돌은 1942620일 악명 높은 스오 마사스에 원장을 환자 이춘상(당시27)이 살해한 곳인데 당시, 수간호사로 재직하며 한센인들을 혹독하게 괴롭힌 사토 간호사가 한센인들을 채찍으로 때려가며 옮겨놓은 돌이다.

소록도 해수욕장은 소록도가 평범한 섬이었다면 상당히 인기를 끌었을 곳이나 민간인에게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는 곳으로 진입로로부터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아름답고,경치가 뛰어난데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모래가 고와서 이국적인 느낌마저 드는 곳이다. 다만,섬 안에서 숙박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저녁 6시 이전에는 반드시 육지로 나와야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에서40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벽안의 수녀님으로 지금도 소록도 원생들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마리안느 스퇴거(Marianne Stoeger·83)와 마가렛 피사렉(Margareth Pissarek·82)은 각각1962년과1966년에 가톨릭교회의 재속회인 오스트리아 그리스도왕 시녀회 회원으로 처음 소록도 땅을 밟았다. 간호사로서 이들은 한센병 환자들 거주지인 소록도에서 구호활동에 매진한다.이후 공식적인 파견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자원봉사자로 남아,반세기에 가까운43(39)동안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한센병 환자들과 그 자녀들을 보살폈다.

20051123, 소록도의 집집마다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보낸 마지막 편지였다.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길 원했던 두 사람은 건강 악화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없고,오히려 소록도에 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200511월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야반도주 하듯 홀연히 섬을 떠났다. 두 사람이 소록도를 떠나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지도 10년이 지난2016년은 소록도병원 개원100주년이 되는 해로 휴먼 다큐<마리안느와 마가렛>(감독 윤세영·작가 양희·내래이션 이해인수녀)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삶을 조명하는 의미에서 기획되었다.

당신들의 천국은 지난2008년에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이 19744월부터 197512월까지 신동아지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소록도를 배경으로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사랑과 공동체 문제를 심도 있게 탐구했다. 아름다운 풍광의 소록도에서 투병하는 주민들의 삶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펼쳐진다.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에 낙토 건설을 명분으로 부임한 의사 조백헌 원장과 이를 끊임없이 견제하는 이상욱 보건과장의 대립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419혁명에서부터 경제개발 독재시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경제 안정과 물리적 삶을 위해 정치적 자유와 정신적 삶을 포기하게 만든 당시의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수필가 김소운(1907-1981)19518월 부산서 집필한 수필집목근통신(木槿通信)’에서 나의 어머니가 레프라(문둥병)라고 해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고 썼다. 또 경상도에서는 문둥병을야이 문디 자슥아’ ‘문디 가스나’ ‘경상도 보리 문디처럼 애정이 담겨있는 친근한 의미로 사용한 사례가 많은데 이는 전라도보다 상대적으로 곡창지대가 적은 경상도에는 보리가 많이 났으니 '보릿고개'로 상징되는 가난의 의미요, 그 가난을 뛰어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아이들(文童), 즉 보리밥 먹고 출세를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이'보리 문동'이었던 것이다.'보리 문동''보리 문둥이'로 격하되다가 '보리 문디'로 이어져 왔다는 얘기도 있고, '보리를 먹으며 공부하는 동쪽 사람들'이라는 뜻의 '보리 문동인(文東人)'이라는 설도 있다.

영화<벤허>에서 주인공 유다 벤허는 하인의 딸 약혼녀 에스더와 함께  문둥이 계곡으로 찾아가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여동생을 안고 어머니와 함께 나온다. 벤허는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끌려가며 넘어진 나사렛 사람에게 물을 떠주었고 십자가에서 못 박힌 나사렛 사람 예수가 부르짖은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얘기를 듣고 응어리졌던 복수의 마음은 사라져미움보다 사랑'이라 생각하자 문둥병에서 치유된 어머니와 여동생을 포옹하며 피날레를 장식하는 영화<벤허>는 소록도와 공통점이 있다.      

주원 최원열 최지호 기자   lymanjoo@naver.com 



김일 기념체육관

 

 

김일 선수는 1929년 거금도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태어나 16세 때부터 국내 씨름판에서 활약하였으며 체격은 180Cm120Kg 정도로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 체격으로는 거인이었다. 장영철, 천규덕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로 활약하며 1960년대~70년대 중반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박치기 왕'으로 불렸다.

 

국내 씨름판을 주름잡다 역도산의 레슬링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불법체류자로 잡혀 일본에서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역도산에게 계속 편지를 써 1957년 도쿄의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로 입문하였다.

 

역도산에게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의 '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을 받고, 특기로 박치기를 연마했다. 일본 현지에서 '원폭 박치기'로 불릴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그의 박치기는 서양의 거구 레슬러도 한 방에 쓰러질 정도였다.


 


1960~70대 박치기 한방으로 국내외 프로레슬링 대회를 흽쓸었던 김일 선수는 고향 거금도에 대한 애향심이 유별났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열렬한 프로레슬링 팬 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일 선수를 청와대로 자주 초청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은 임자, 소원이 뭔가라고 물었다. 당시 고흥군 거금도 주민들은 김을 채취하는 것이  생업이었으나 당시 전국의 섬마을마다 야간에는 등잔불에 의존해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다. 김일 선수는 고향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김 수확에 어려움을 겪고 제 레슬링 경기를 TV로 볼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6개 월 후 거금도에는 전국 섬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다.

김일 선수가 2006102677세로 타계하자 역사(力士)의 고장전남 고흥군은 고인의 생가 옆 13천여 부지에 기념관과 체육관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김일 기념체육관은 김일 선수의 제자이자 영화 <반칙왕>의 실제 모델인 박종호 관장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소록도 거금도가 위치한 전남 고흥 출신 스포츠 스타는 김일 선수를 비롯해 축구의 박지성, 김태영, 골키퍼 김영광 선수와 권투의 유제두, 백인철 선수 등이 있다.  김일 기념체육관 전화 (061)830-6720

주원 기자 lymanjoo@naver.com


댓글

  • lyman
    김일 기념체육관 기사 1단 '4500px' 는 180cm 수정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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