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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근대문화활성화사업단 게시판 입니다.

<부산근대문화자산활성화사업단 >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리차드 위트컴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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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0-14 조회 991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리차드 위트컴 장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유일한 장성, 리차트 위트컴 장군


 

 

안녕하세요? 장노년일자리지원센터 부산근대문화자산 활성화사업단입니다

오늘은 경건한 마음으로 피란 수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유산 중 하나인 유엔기념공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난번에 재한유엔기념공원을 하나의 포스팅으로 전하기엔 소중한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2부를 약속했었습니다. 이제 어슴푸레하게 남은 UN 데이의 기억과 함께 유엔기념공원 이야기를 써봅니다.


 


유엔기념공원 안장자 중에 유일하게 장군이 계십니다그는 바로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준장)이었던 리차드 위트컴 장군입니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311. 부산역전 대화재는 싹이랄 것도 없는 작은 희망마저 송두리째 태워버리고, 부산을 절망의 구덩이로 몰아넣었습니다깊고 깊은 절망에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운 사람이 바로 위트컴 장군입니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 묘역 (사진 출처 :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부산역전 대화재로 오갈 데 없는 3만여 명의 이재민을 위해 텐트, 의류 침구류, 식량 등 군수물자를 지원했습니다위트컴 장군이 지원한 군수물자로 어떤 이는 곤한 몸을 쉬게 하고또 누군가는 살아갈 용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미국 청문회에 소환되었을 때 한 말이 바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였습니다이는 위트컴 장군의 신념이자 인류애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인 것 같습니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생애 (사진 출처 : 유엔평화기념관 전시 사진)

 


그는 영도구의 피란민촌에서 만삭의 임산부가 보리밭에서 아기를 낳는 장면을 목격하고산원(조산소)을 설치했고장병들 월급의 1%를 기부하게 해 메리놀 병원 신축공사를 지원했습니다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부산대 장전동 캠퍼스 설립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과 공덕비 (출처 : 유엔평화기념관 전시 사진)

 

 

전쟁이 끝난 후 전쟁고아를 위해 함께 활동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해 한국에 정착하면서전쟁고아 돕기와 미군 유해 발굴을 위해 평생 헌신했던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198289세 나이로 영면하면서 한국에 남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미망인 한묘숙 여사는 장군이 하던 유해 발굴 작업을 이어나갔고사망 후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위트컴 장군과 함께 안장되었습니다.

 

 

리차드 위트컴 장군 묘역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아버지, 삼촌, 형제이기도 하지요.이름과 소속 부대, 군번으로만 기억하기보다 그들은 어떤 이였는지, 살아생전 누구를,무엇을 사랑했는지 궁금했고, 70년이 지났지만그들의 이야기를 유가족들과 함께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 유엔기념공원 페이스북 -


 

 

유엔기념공원 전경 (유엔기념공원 홈페이지 사진)

 


유엔기념공원에는 리차드 위트컴 장군을 위시해 2,315명의 전몰 용사들이 함께 안장돼 있습니다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전몰 용사 모두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희망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